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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안미경의 심리칼럼] 추앙은 힘이 세다 날짜 2022.06.15 00:19
글쓴이 예담심리상담센터 조회 217


추앙은 힘이 세다



“나를 추앙해요!” 세상 재미없고 단조롭게 살던 염미정이 이름도 모르는 구씨를 향해 던진 드라마 속 대사다. 추앙이라니. 낯설고 어색하다 못해 해괴하기까지 하다. TV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는 ‘추앙’ 붐을 일으키며 막을 내렸고 아직껏 그 여열이 뜨겁다. 그런데 왜 사랑이 아니고 추앙이어야 했을까.


흔히들 사랑은 가장 고귀하고 위대한 감정이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경험은 제각각이고 정의도 다각적이다. 그 중 일부를 소개하자면 스턴버그는 사랑의 세 가지 요소로 친밀감과 열정 그리고 책임을 꼽는다. 책임이 빠진 사랑은 낭만적이지만 그러다 끝난다. 열정으로 채워진 사랑은 환희로 가득하지만 휘발성이 강해 쉽게 사라져버린다. 사랑은 세 가지 요소가 모두 갖춰질 때 완성되지만 실제로 세 요소의 균형을 고루 맞추기란 쉽지 않다. 초기에 높았던 열정의 비중이 낮아지면서 점차 책임의 비중이 높아지는 게 사랑을 오래도록 잘 유지하는 커플들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하지만 책임만으로 유지되는 사랑은 건조하기 짝이 없다.


상담실을 찾는 대다수 내담자의 이슈도 늘 그 안에 사랑이 자리 잡고 있다. 누구나 멋지게 사랑하며 잘 살고 싶지만 실제로는 사랑만큼 복잡하고 따질 게 많은 감정도 없다. 상대가 아내나 남편이든 이웃이나 친구든 이리저리 재고 요구하고 잡아당기며 어떤 기준에 맞추려 애쓰고 불만족을 참아 넘기기 어려운 게 사랑이다. 얼마 전 이혼위기로 상담했던 부부의 경우 남편은 다시 같이 잘 살기 위해서는 아내가 이러저러해야 한다고 조건들을 나열했다. 제시된 내용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현실에서의 사랑은 늘 이렇게 상황과 조건에 따라 바뀌고 뒤집힌다. 심지어 부모와 자녀 사이의 사랑도 움직이는 건 매한가지다.



나의해방일지.jpg


사랑이 어렵고 복잡하다면 내가 이해한 추앙은 단순하다. 무조건적으로 존중하겠다는 결심이다. 그래서 상대를 가리지 않고 조건을 따지지도 않는다. 드라마 속 주인공은 상대가 무슨 일을 하는지 상관하지 않는 것을 넘어 심각한 알콜중독이고 미래에 대한 기약도 없지만 그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다. 금주나 직업 변경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그러다보니 기쁜 일에 기뻐하고 슬픈 일에 슬퍼하며 떠나면 기다리고 오면 반긴다. 얼핏 참 비현실적이고 바보 같지만 철저하게 주체적이고 용감하다. 그래서 추앙은 힘이 세다.


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팬텀 스레드’에서 디자이너 레이놀즈는 웨이트리스인 알마에게 첫눈에 반하지만 그녀에게 온갖 까탈을 다 부린다. 알마는 레이놀즈의 과민한 성격 이면의 결핍과 불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돌보면서 그를 지켜주기로 한다. 알마의 선택이 사랑의 정석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다만 그들의 사랑이 아름다웠다면 그건 그녀의 다짐 때문이다. 끝까지 자신의 사랑을 지키고 완성하겠다는.


이것저것 재는 사랑은 얼핏 세련되고 멋있어 보이지만 아슬아슬하다. 그에 비해 무모하고 촌스럽게 느껴지는 추앙은 그 자체로 힘 있게 서로를 끌어당긴다. 다짐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 힘이 오히려 자신과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추앙이 갖는 힘이다. 너무 복잡한 사랑법에 둘러 쌓인 우리가 추앙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래서다.



안미경 예담심리상담센터 대표·교육학 박사



*** 위 글은 브릿지경제 '브릿지칼럼' 2022-06-13 19면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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