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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안미경의 심리칼럼] '그래도 되는' 폭력은 없다 날짜 2021.10.31 18:49
글쓴이 예담심리상담센터 조회 388

'그래도 되는' 폭력은 없다



군대생활을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 ‘디피’(D.P.)가 이슈다. 순하고 선하기만 하던 병사가 탈영해서 자신을 그리도 가혹하게 괴롭히다 제대한 군대상사를 찾아내 물었다. “왜 그랬냐?”고. 그 대답은 이미 끔찍한 폭력으로 심신이 만신창이가 된 그를 다시금 산산조각 낸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어”. 그 말에는 반성이나 양심은커녕 일말의 자의식, 자기행동에 대한 자각이 전무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폭력의 얼굴은 이처럼 잘잘못이 명료하지만은 않다. 때로 사안이 애매해서 유연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고 행위의 전후좌우를 살피는 신중함도 요구된다. 자칫 또 다른 피해나 억울함을 야기할 수 있어서다.


넷플릭스 D.P.JPG



필자는 아동학대평가회의에 참석 중이다. 접수된 신고사례의 학대여부가 애매하거나 사안이 중대할 때 관할부서에서 관련분야 전문가의 자문을 구하는 회의다. 막상 접해본 평가사안의 애매함과 중대함은 매우 현실적이다. 그 중엔 행위 자체는 분명히 부적절하거나 바람직하지 않지만 처벌이 따르는 학대행위에 포함시켜야 하는지는 좀더 고려해봐야 할 내용들이 꽤 있다. 처벌보다 교육이 필요한 경우가 그렇다.


성적인 신체접촉을 이유로 신고된 지적 장애인 부친의 경우를 보자. 부친은 딸이 귀여워 엉덩이를 토닥이는 장난이 왜 잘못인지 모르겠다고 재차 물으며 동그래진 눈으로 조사관을 응시했다고 한다. 여자아이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아빠의 그런 장난이 불쾌하다는 설명을 듣자 그제야 상황을 이해한 부친은 다시는 안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빈도나 정도의 고려가 평가의 절대기준은 아니지만 사건맥락에 따라 필요하기도 하다. 일탈행동을 일삼는 아이의 등짝을 내려친 모친은 학대처벌보다 아이의 일탈에 대한 적절한 치료적 조치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폭력에 대한 당사자 인식이 부족한 경우다. 사안이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을뿐더러 해결을 위한 개입과정이 무력화되기 일쑤다. 학업에 집중된 모친의 지나친 간섭으로 관계가 틀어진 엄마와 아들은 물리적 충돌이 잦아져 아들이 쉼터로 이동을 할 만큼 심각해졌다. 아이의 정서적 고통이 한계에 이르러 숨이 넘어가기 직전인데도 양육권자인 모친은 아들 학원과 병원기록을 문제 삼으며 아들의 심리검사 실시조차 거부하고 있었다.


아동폭력.jpg



계절에 맞지 않는 더러운 옷을 입고 몸에서 냄새가 나 아무도 사귀려는 친구가 없던 아이는 어떤가. 아이는 깨끗하게 씻는 것조차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부모에게 혼나고 맞으며 학교를 다녔다. 지나친 방임으로 분리조치를 당한 부모는 쓰레기장 같던 집을 싹 다 청소해 주거환경을 바꾼 뒤 아이를 사랑한다며 용서를 구했으나 아이의 상담사와 담임 및 조사자 모두가 부모의 반응을 신뢰하기 어렵다고 보고했다. 부모의 시선이 외연적인 환경변화에만 집중돼 있고 그 동안 다쳐온 아이의 마음 속 상처와 아픔, 두려움에 대해서는 여전히 알지도 못하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아서다.

스스로의 행동과 그 행동의 결과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는 상대를 두번 죽이는 무책임한 말이다. 자신을 향한 상대의 반응을 살피고 상대를 향한 스스로의 언행과 마음을 돌아보고 생각해보면 된다. 진지하게, 그리고 진심을 담아서.


안미경 예담심리상담센터 대표·교육학 박사


**위 내용은 브릿지경제 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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