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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안미경의 심리칼럼] 진정한 애도 날짜 2022.12.13 23:42
글쓴이 예담심리상담센터 조회 118



진정한 애도




“선생님, 제가 참사 생존자인가요”라는 인터넷 글이 조용히 눈길을 끌고 있다.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살아남은 뒤 받은 자신의 심리상담 내용을 정리한 기록이다. 온 국민이 참담한 마음으로 가슴 아픈 날들을 보내고 있는 요즘 잔잔한 위로가 되고 있다. 그는 할로윈을 즐기러 놀러갔다는 창피함과 살아남았다는 미안함, 또 그들을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도망쳤다는 부끄러움을 경험하며 그런 자신이 징그럽게 느껴졌다고 고백한다. 아울러 그는 그런 자신의 고통을 상담자와 나누고 또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건네는 많은 사람들의 따뜻한 위로와 공감의 말을 들으면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며 감사한다.


심리적 외상을 경험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엄청난 일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는 당혹감과 심리적 고통에 시달린다. 하루 빨리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종종 선택되는 방법 중 하나는 자책이다. 자신을 탓하며 스스로를 벌주는 것으로 심리적 괴로움을 감당하는 것이다. 자신을 책망할 수는 있지만 건강한 방법은 아니다. 자신을 비난하며 무력하게 무너져 있거나 슬픔에 잠겨 울고만 있다면 위로하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위로받지 못한다.  


자책하는 마음은 무의식적으로는 양가적인 측면이 있다. 스스로를 벌줌으로써 잘못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대한 외부의 비난과 두려움을 방어하는 면도 있고, 잘못한 자신을 괴롭히는 처벌을 통해 자기잘못을 상쇄하려는 면도 있다. 그의 글이 우리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이러한 감정들을 피해가지 않고 대항하며 자기자리를 찾아가려 애쓰는 모습 때문이다. 그건 우리 모두의 마음이고 우리가 가야할 길이기에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고 연결시킨다.


필자가 전화상담으로 만난 이태원 참사 생존자 역시 비슷한 죄책감을 토로하고 있었다.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여겨져 문을 열어준 카페를 통해 친구들과 빠져나왔으나 그 뒤 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보고서는 싸워서 다쳤거나 약을 먹었나보라고 생각하며 지나쳤다고. 밤새 놀고 다음날 아침이 되어서야 자신이 본 사람들이 그냥 쓰러진 것이 아니었음을 알고 너무 끔찍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그리고 그런 자신이 너무 잘못한 사람 같아 아무것도 못하겠어서 회사출근도 못하고 있다고.


몰랐던 것에 대해 알았어야 했다고 강제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 옆에서 놀고 있었다고 비난하지 않으면 좋겠다. 돕거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또 비겁하고 용기 없다고 지적하지 않으면 좋겠다. 몰랐던 게 잘못이 될 수 없고 노는 것은 우리 모두의 부분적 일상이며 우린 늘 도울 준비가 되어있거나 언제나 용기 있는 사람들은 아니다. 우리는 영웅이 아니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런 우리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슬퍼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애도가 되어야 한다.


자신이든 타인이든 누군가를 탓하는 것은 진정한 애도와 거리가 멀다. 슬픔은 탓하며 피해야 하는 감정이 아니라 잘 지나가도록 안아주고 길을 열어줘야 하는 감정이다. 약하고 보잘 것 없게 여겨지거나 충분히 의롭지 않다고 여겨지는 그런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은 상당히 힘들다. 우선 자신을 향해 공격하고 있다면 그것부터 멈추자. 그리고 물밀 듯 밀려드는 슬픔을 감당해 보자. 혼자라면 압도되기 쉽다. 나눠야 한다. 그렇게 슬픔을 충분히 감당하며 대항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슬픔은 우리에게 위로가 되고 따뜻한 온기를 내어준다. 애도의 완성은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데 있다. 지금 우리는 애도 중이다.


안미경 예담심리상담센터 대표, 교육학 박사


**브릿지경제 오피니언 <브릿지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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