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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안미경의 심리칼럼] 가족이라는 이름의 가해자 날짜 2023.04.05 19:43
글쓴이 예담심리상담센터 조회 118
가족이라는 이름의 가해자

학교폭력을 다룬 넷플릭스 시리즈물 ‘더 글로리’의 반응이 여전히 뜨겁다. 극 초점이 또래관계 폭력에 맞춰져 있지만 주인공 문동은(송혜교)을 괴롭혀 온 대상은 학교친구들만이 아니다. 폭력을 방관하고 학생을 차별하는 교사나 돈을 받고 가해자들의 폭행을 무마한 엄마도 그들과 다를 바 없다. 오히려 동급인 동료들의 끔찍한 괴롭힘보다 나를 지켜줘야 할 혹은 지켜주리라 믿었던 보호자로부터의 배신이라는 점에서 더 잔혹하다. 어쩌면 문동은의 절망은 동급생의 괴롭힘 보다 엄마로부터의 버림받음이 그 시작이 아닐까 싶다.

그런 맥락에서 문동은의 비극은 가족이라는 단어의 정서적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가족’이라고 말할 때 떠오르는 느낌이나 이미지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내 편’이다. 내가 잘못했어도 야단을 칠지언정 따뜻한 품을 내어주고 내치지 않는다는 믿음이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친밀함이나 보호에 대한 기대는 본능적이고 집요하다. 그런 만큼 이에 대한 반작용과 충격도 크다.

부모와 갈등이 깊은 청소년들을 만나다 보면 종종 그 뒤에 강압적이거나 폭력적인 부모가 있다. 알코올 중독자인 문동은의 모친은 대놓고 폭력적인 경우에 속한다. 반면 부모의 지배적인 모습이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어느 삼수생의 부친은 학원비와 외지 생활비를 대주는 만큼 증여세를 낼 수 있다며 모든 사용내역을 현금영수증 처리하도록 자녀에게 요구했다. 그렇잖아도 부모에게 미안함이 컸던 자녀는 자신의 일상을 고스란히 증명하며 지내야 했다. 부친은 자신이 자녀의 진로를 지원하며 헌신한다고 여길 뿐 자녀를 억압하고 지배하는 자신의 태도를 보지 못했고 속박당한 자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부모는 틀린 말을 하지 않는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의 말은 반박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래서 더 상처가 깊다. 가족이라는 친밀감과 ‘자식을 위해서’라고 포장된 이기적인 욕구는 죄책감 없이 걷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알고 보면 주변 일상에서 흔히 발견되는 우리들의 얘기다. 이를테면 부모에 대한 효도는 옳다. 하지만 자녀의 효심을 강요하는 것은 다르다. 경계를 넘어서는 정서적 침해에 해당한다. 일종의 폭력이다.

자식을 키우느라 고생한 부모가 늙어 ‘힘에 부치니 일 좀 도우라’고 하면 자녀가 이를 거절할 수 있을까. 문제는, 겉으로는 옳은 말을 하는 것 같지만 은연 중 자신의 의도를 강조하고 압박하여 선택의 여지없이 상대를 몰고 가는 데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이를 부모도 자녀도 인식하지 못한 채 각각 당연한 권리와 의무로 여기며 그 속성이 지속된다는 점이다.

그래도 가족인데 가해할 수 있는가. 그렇다. 가족이지만 피해를 주기도 하고 입기도 한다. 누구나 가족과 함께 그런 기대와 실망 사이를 오가며 산다. 때론 ‘그래도 가족’이라는 온기를 느끼지만 때론 ‘이게 가족인가’ 싶은 냉기를 경험한다. 어쩌면 그 위태로움이 가족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더 맹목적이고 절대적으로 만들기도 한다. 가족은 분명 가장 친밀한 관계이고 비교할 수 없는 최상의 보금자리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의 개별성이 지워진 채 지배적이고 일방적인 힘에 의해 좌우될 경우 이보다 더한 지옥이 없다. 가족은 그 어떤 관계보다 존중이 중요하다.


안미경 예담심리상담센터 대표·교육학 박사


**브릿지경제 '브릿지칼럼'에 2023.4.5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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