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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안미경 브릿지칼럼] 베트남아내 폭행: 이주여성의 일상어 “때리지 마세요" (예담심리상담센터) 날짜 2019.09.04 16:36
글쓴이 예담심리상담센터 조회 673


[안미경 칼럼] 베트남아내 폭행

이주여성의 일상어 “때리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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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에 웅크리고 앉은 베트남 아내를 향해 남편의 주먹과 발이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두 살배기 아들이 놀라 울부짖는데도 동영상 속 한국인 남편은 아랑곳없이 아내를 때렸다. 이유는 한국말을 잘 못해서, 하지 말라는 음식을 만들어서다.

지난해에는 필리핀 출신 30대 이주여성이 50대 남편의 손에 살해됐다. 남편의 통제가 심해 친구나 가족과도 연락이 끊긴 채 공장과 집만 오가며 7년간 생계를 책임지다가 고통스럽게 눈을 감았다. 2017년에는 중국인 이주여성이 알코올 중독자인 남편의 상습폭행에 시달리다 결국 숨졌다. 그는 10대 자녀 둘이 지켜보는 앞에서 남편에게 학대당하며 죽어갔다.

이같은 다문화가정 내 폭력은 2017년 918명에서 2018년 1340명으로 늘었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결혼 이주여성의 가정폭력 경험은 42.1%에 이른다. 이주여성의 절반 가까이가 심한 욕설을 듣거나 매를 맞는다는 얘기다. 특히 한국남성들이 국제결혼을 많이 하는 베트남 여성들의 피해가 가장 크다. 2007~2017년 사이에 가정폭력으로 사망한 19명의 결혼이주여성 중 13명이 베트남 여성이었다.

이주여성들이 경험하는 폭력은 워낙 잦고 심하지만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남편이 처벌받는 경우는 드물다. 특히 법 조항에는 이주여성의 국적 취득에 남편이 전권을 행사하게 돼있다. 이에 이주여성들은 남편의 폭력 앞에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폭력을 피해 쉼터에 입소한 이주여성이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 결혼생활을 지속하는 경우가 반 이상이다. 이혼을 하게 되면 한국에 더 이상 체류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때리는 남편 앞에서 이주여성은 참고 빌며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결혼이주여성의 가정폭력 문제 뒤에는 ‘가정폭력은 집안 일’이라는 한국사회의 뿌리 깊은 방관적 태도와 가부장적 사고가 자리잡고 있다. 심지어 매 맞는 한국인 아내가 도와달라 신고하고 들은 말은 “(남편을) 도발하지 마세요”였다. 이는 문제의 책임을 피해자에게 두는 왜곡된 시선에서 비롯된다. 

김도연 국민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TV의 외국인 프로그램에서도 백인국제결혼 가정은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뤄진다. 반면 동남아시아 결혼이민자나 다문화가족 자녀에 대해서는 온정을 베푸는 대상으로 여기는 인종차별적 의식이 숨어있다. 작년에 한 중견정치인이 “한국 남성들이 베트남 여성을 아주 선호하는 편”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구설에 오른 일도 그런 맥락이다. 무심코 내뱉은 무의식적인 말이나 행동에서 우리의 인권감수성이 드러나는 법이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238만명인 우리나라는 이미 다문화 시대 한가운데 서있다. 이들과의 건강한 공존을 위해서는 이주민 학대범죄에 대한 강력한 처벌은 물론 폭력에 방치되는 일을 예방하기 위한 행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이주여성 대상 학대범죄가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인권 일반의 문제라는 인식의 전환이다. 더 이상 “때리지 마세요”가 이주여성의 일상어가 되어서는 안된다.


  by 예담심리상담센터 안미경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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