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보상 욕구가 자기 뜻대로 채워지지 않을 때 서운함을 느끼는 정도에서 그치면 괜찮은 경우다. 문제는 성급히 불만을 터뜨리거나 상대에게 감사의 태도를 요구하며 비난할 때 생겨난다. 위 사례의 경우 남편의 연로한 부친은 술을 마실 때마다 아들을 불러 앉히고 자신의 지원을 고마워하지 않는다고 야단을 쳤다. 며느리의 살갑지 않은 태도를 아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꾸짖은 것이다. 이를 옆에서 지켜본 며느리는 마음이 어땠을까.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며느리와 시댁 관계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자리잡고 말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를 바라보는 남편의 시각이다. 남편은 매번 부친을 화나게 하는 아내의 태도가 잘못이고 바뀌어야 한다고 여겼다. 아내만 자신의 부모에게 잘 하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지원은 다 받아놓고 그들의 타당한 요구를 외면한다’며 아내를 탓하는 마음이 오랜 가출과 관계차단으로 이어졌다. 남편 입장에서 아내가 받기만 하고 주지는 않으니 부당하다고 여겨지는 건 심정적으로 그럴만하다. 그래서 얼핏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자기 부모에게 배우자가 잘하면 좋지만 잘해야 한다는 전제는 조심스럽다. 관계에서의 역할과 도리를 일방적으로 강제하는 것은 아무리 바람직하고 타당한 이유가 있다 해도 부담스럽고 불편해서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차라리 할 수 있는 아들이 더 잘 하는 게 좋다. 부모가 서운해하며 역정 내는 걸 감내하기 어려우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명절의 외연은 점점 세련돼 가고 있으나 명절에 대한 사고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명절 스트레스는 옷만 바꿔입었을 뿐 여전할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1년에 다섯 번밖에 안 가는 데…”라며 아내에게 불만을 이어갈 것인가. 싫다는 아내가 이해하기 어려워도 아내를 바꾸려 애쓰며 관계를 깨뜨리는 대신 수용하는 자신의 변화도 생각해야 한다. 무엇이 더 중한가.
안미경 예담심리상담센터 대표·교육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