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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안미경의 심리칼럼] 유기, 그 버려짐의 공포와 허기 날짜 2023.07.22 23:40
글쓴이 예담심리상담센터 조회 128


심리적 유기, 그 버려짐의 공포와 존재론적 허기




미신고 영아사건을 수사하며 영화보다 더한 현실이 드러나고 있다. 출생신고 없이 버려진 아이들,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지만 이미 780건을 수사 중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이렇게 버려진 아이들의 실제 이야기로 일본 스가모 아동 방치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다고 전해진다.

혼자 아이 넷을 키우는 엄마는 학교에 가고 싶어 하는 딸에게 “학교 가면 아빠 없다고 왕따를 당한다”며 아무도 학교에 보내지 않는다. 심지어 아이들을 집 밖에도 나가지 못하게 한 뒤 엄마 자신도 아이들을 떠난다. 그렇게 남겨진 4남매는 세상으로부터 서서히 지워져 가지만 ‘아무도 모른다.’ 그들이 누군지, 누가 살고 있었는지.



아무도모른다.jpg
영화 '아무도 모른다' 포스터


물리적 유기 만큼이나 심각하고 두려운 것이 심리적 유기다. 심리적 유기는 홀로 남겨지거나 버림받은 느낌을 갖는 주관적인 감정상태다. 이로 인한 버려짐의 공포는 엄청난 심리적 외상을 가져온다. 우울이나 무력감에 눌리는 것은 물론 대인관계에서 회피적이거나 의존적,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며 부적응적인 사고와 행동으로 이어지기 쉽다. 관심과 애정에 집착하며 강박적인 성향이 되기도 한다. 세상에 잘 적응하며 살아가기가 힘들어진다는 얘기다.

실제적인 유기가 아니어도 부모로부터 무시나 방치, 존재의 거절을 경험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부모의 잦은 싸움이나 이혼과정에 노출된 자녀들은 자신도 언젠가 부모에게 버려져 혼자 남게 될 수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한다. 이럴 경우 아이들은 지나치게 순응적인 모습으로 부모가 떠나지 않게 하려고 애쓰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산만하고 공격성을 드러내며 끊임없이 부모의 마음을 확인하는 문제행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혼소송 중인 부부에게 두 아이가 있었다. 큰 애는 겉으로는 말없이 조용한 모습이었으나 감정표현 없이 자신을 숨기며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불안한 내면과 대치하고 있었다. 둘째 아이는 끊임없이 말하고 움직이며 주의를 끄는 것으로 두려움을 해소하려는 모습이었다. 그러다 보니 첫째는 학교와 집안에서 겉 돌았고 둘째는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계속 지적이나 비난을 받으며 등교를 거부하곤 했다. 유기불안이나 공포는 어떤 식으로든 세상을 밀어내게 한다.

성인이라고 심리적 유기와 무관한 건 아니다. 이성교제를 하다 헤어질 경우 심리적 유기감을 느끼면 이별이 유난히 어렵다. 실제로 자신과 맞지 않음을 잘 알고 있고 끊임없이 상처받으면서도 5년, 7년씩 헤어지지 못하고 만남을 유지하며 괴로워하는 커플들을 본다.

버려짐의 공포는 단순히 아픈 상처가 아닌 심연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내가 사라질 수 있다는 실존적 두려움이다. 관계 단절의 수준을 넘어 존재 가치를 부정당하는 것이기에 심리적 외상의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단순한 의지의 문제로 치부할 게 아니라 상담치료가 꼭 필요하며 치료에도 시간이 걸린다.

옛 어른들이 어린자녀에게 장난 삼아 말하던 ‘너를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도 실제로는 유기의 의미가 숨겨져 있는 무서운 말이다. 그 말을 듣고 울며 집을 나간 아이에게는 절대 재밌는 추억이 아니다. 많은 아이들이 어릴 때 잠시 엄마와 떨어져 있게 된 상황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원망한다는 보고를 접하곤 한다. 애나 어른이나 버려지는 게 무섭고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안미경 예담심리상담센터 대표·교육학 박사


** 위 글은 브릿지경제 '브릿지칼럼' 2023.7.20.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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