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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안미경의 심리칼럼] 공허함에 대처하는 자세 날짜 2023.06.23 20:25
글쓴이 예담심리상담센터 조회 169

공허함에 대처하는 자세



다음 생에 단 하나의 기억만 허락된다면 무엇을 가져갈 것인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화 ‘원더풀 라이프’를 통해 다음 생에 가져갈 단 하나의 기억을 집요하게 묻는다. 하나를 고르는 것도 쉽지 않지만 뒤집어서 생각하면 나머지 기억은 다 지워진다는 얘기다. 과연 삶에서 지워도 되는 기억과 단 하나로 꼽힐 수 있는 기억이란 게 있을까.

영화의 역설적 설정은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설령 가져가고픈 기억이 전혀 없다 해도 누구나 좋았던 기억이 몇 가지는 있기 마련이다. 삶이 어려운 건 정답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래도 괜찮은 그 무언가를 찾으려는 노력이 없어서는 아닐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면서도 그런 내가 만족스럽지 않고 채워지지 않는 느낌, 내가 내가 아닌 듯 해리된 느낌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 우리는 공허함이라고 표현한다. 결이 다르지만 일상에서 느끼는 허한 감정들은 다소 익숙하다. 애들 다 키우고 난 뒤, 또는 평생 책임을 다한 직장의 퇴직을 앞두고 느끼는 허전함이나 암 투병을 하며 죽음의 문턱에 다녀온 뒤 느끼는 삶의 무상함 등도 뭔가 구멍이 난 듯 딱 붙어 살아온 현실과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이런 공허한 느낌들은 때로 병리적으로 진행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인간의 실존적 특성이기에 떼어내기 어렵고 함께 하기엔 참으로 고통스런 고약한 감정이다. 때문에 정도나 양상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누구나 경험하곤 하는데 만성적 공허감에 시달릴 경우는 심각한 사안으로 괴로움이 크다. 바라는 것들이 주어지지 않을 때 보통은 좌절하거나 화를 내게 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나 역시 상대가 원하는 것, 또는 내가 주고픈 것을 ‘주지 않으며’ 스스로 힘들어지는 측면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영화내사랑포스터.jpg



또 잠시 영화 얘기다. 화가 모드의 이야기를 그린 샐리 호킨스와 에단 호크 주연의 영화 ‘내 사랑’에서 주인공 모드는 말도 어눌하고 몸도 불편해서 뭔가 모자란 사람 취급을 받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바라는 것이 주어지지 않던 그녀의 삶을 채워나가는 소소한 방법을 찾아낸다. 호의적이지 않은 세상이지만 그림을 그리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만족하는 삶을 이어나간다.

“이 집의 서열을 말해 주죠. 나, 개, 닭, 그 다음이 당신이에요.” 남편은 이렇게 말하며 모드를 무시하지만 그녀는 “사람들은 당신을 싫어하지만 난 당신을 좋아해요. 그리고 당신은 내가 필요해요”라며 물러서지 않는다. 이후 모드가 죽기 전 자책하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많이 사랑받았어요”. 모드는 자신이 함부로 여겨진 기억만 가지고 있지 않고 소중히 여겨졌음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종종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허전함을 느끼고 때로는 별다른 이유 없이 공허감에 휩싸이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으나 ‘다 그렇지는 않음’도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공허감을 견딜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극복은 불편한 상황을 리셋하는 것이 아니라 때론 견디는 것이고 적응하는 것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부터 늘 자기가 누군지 모르겠고 좋았던 적도 없으며 뭔가 부족한 사람 같아서 제대로 살 수 없을 것 같은 무력감과 공허감에 짓눌려 지낸 한 여성은 그럼에도 자신이 잘 하는 게 있고 즐거웠던 순간이 있으며 기대와 욕구가 살아있음을 발견하며 자기 내부의 공허한 느낌과 불안감을 다룰 수 있게 됐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주어진 고약한 감정에 압도돼 스스로 불쌍한 존재가 될 것인가. 아니면 모드처럼 원하는 걸 스스로 만들어내며 벗어날 것인가. 이것은 선택의 문제다.



안미경 예담심리상담센터 대표·교육학 박사


**2023.6.16. 브릿지경제 '브릿지칼럼'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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