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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본] [안미경의 심리칼럼] "엄마를 버려요" 날짜 2023.12.10 03:26
글쓴이 예담심리상담센터 조회 95

버릴 건 버리자




“엄마를 버려요.”

듣는 순간 동공을 뒤흔들게 만든 인상적인 대사였다.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서 정신과 의사 황여환(장률)이 간호사인 자신의 연인 민들레(이이담)에게 건네는 조언이다. 오랜 기간 착취적인 엄마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희망없이 살던 가난한 간호사는 그 말을 듣고 과감히 엄마를 버린다. 천륜이라는 끊을 수 없는 관계에 끌려다니는 삶을 거부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기로 한다.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말라며 애인도 버리라는 남자친구의 말에 그는 1년간 크루즈 여행길에 오르며 연인 곁을 떠난다. 본인이 빠지면 빈자리 메우느라 힘들어질 직장동료들도 버린다.

버린다는 말은 얼핏 무섭다. 관계를 끊어내는 주체가 되거나 버려지는 대상을 만들어내는 가해자처럼 느껴져서다. 드라마에서 사용된 버리라는 말은 매이지 말라는 은유적 표현이지만 우리는 그 단어가 갖는 사회통념적 의미 앞에 눈치를 보게 된다. 저마다 주체적임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나를 떠난 너의 주체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주체적인 너에게 배신감을 느끼기도 한다. 정말 나의 책임이고 주체적 관계인지를 살피기 전에 자유롭고 싶은 자신의 욕구를 죄책감으로 때리며 주어진 상황에 복종하는 이유다.


정신병동에도아침이와요2023.jpg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의 정신과 의사 황여환과 연인인 간호사 민들레.



드라마 속 간호사는 엄마를 감내하며 사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여겼지만 모친의 무책임한 낭비를 감당하는 것은 효도도 그 무엇도 아니다. 윤리적 감투를 쓴 기만이나 죄책감을 활용한 심리적 지배에 가깝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상대에게 희생을 요구하며 입장을 살피지 않는 것 역시 억지이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다. 상대가 소중하다면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살피고 원하는 것을 이루도록 밀어주는 것이다.

힘들다고 여기면서도 정작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일은 꽤 어렵다. 발을 빼는 순간 더 힘든 상황으로 곤두박질치거나 영영 돌이킬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견뎌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런 선택을 하는 나에 대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여길지, 또 나는 죄책감을 느끼거나 후회하게 되진 않을지 조심스럽다. 반면 익숙한 방식을 유지하는 것은 수동성의 편리함과 안정감을 준다.

어느 20대 청춘은 신용회복을 위해 월급의 반을 지불해야 하지만 회복의지가 없다. 가까워진 동료를 떠나 낯선 곳으로 가는 게 싫어서 왕복 3시간 거리의 직장을 다니며 가까운 지점으로 옮기지 않는다. 힘든 얘기를 들어주지 않고 냉담한 남자친구도 수년째 그냥 만난다. 더 별볼 일 없는 사람을 만나게 될까봐. 사정이 이러니 사는 게 우울하고 삶에 대한 기대도 없다. 그녀는 자기 삶에 희망이 없다고 믿었다.

꾸준한 상담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던 그녀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음을 알아차린 이후 힘을 내기 시작했다. 물론 원하는 결과를 단번에 얻기는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한 단계씩 나아가면 지금의 현실보단 나아진 오늘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어쩌면 이런 용기나 확신이 없어서 우리는 매일 다시 아침이 오는 것을 반기지 못하는 건 아닐까. 주변을 다시 한번 둘러보고 버려야 할 것들을 과감히 하나씩 정리해 보는 연말이 되면 좋겠다. 그래서 새해에는 정말 원하는 나로 한 발자국 더 다가가길 바란다.



안미경 예담심리상담센터 대표·교육학 박사



**브릿지경제 브릿지칼럼 2023.12.8. 19면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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